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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브라의 역사는?

◈악기 Introduction

by ♣Icarus 2020. 2. 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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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배를 반으로 자른 모양의 몸통과 긴 목이 특징인 돔브라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아프가니스탄,타타르스탄 등지에서 널리 연주되는 류트족의 발현 악기인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악기 '돔브라' 의 역사(19세기 이전,19세기,20세기,21세기의 돔브라)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심도깊게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세기 이전의 돔브라


돔브라는 12세기 경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이때부터 돔브라는 시로 써진 민족의 영웅담이나 구전설화를 구술할 때 반주악기로 사용되었습니다. 돔브라의 반주와 함께 구술되는 시들이 민족의 공동체 의식과 자긍심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돔브라 역시 민족 정신을 상징하는 악기로 인식되어 왔고.....특히 오랜 기간의 역사 동안 외세의 지배 하에 있었던 카자흐스탄인 들에게 돔브라는 민족의 자긍심을 후손들에게 계승하는 문화의 통로 역할을 하였습니다.(돔브라를 그냥 쉽게 한 마디로 설명하면 카자흐스탄의 국민 악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19세기의 돔브라


1)악보집의 편찬


전 세대까지 구전되어 오던 돔브라 악곡들은 악보로 기록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는데요. 음악 이론가 자타예비치(Aleksandr Zatayevich, 1869~1936)는 카자흐스탄의 민속음악을 연구하며 약 3,000개의 기악곡을 수집 및 기록하였고.....2,300 여 곡의 기악음악을 편집하여 기악음악의 발전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자신이 집대성한 1,500 곡 들을 두 권의 악보집으로 나누어 출판하였는데.....악보집은 『1000 선곡집』(1000 songs of Kyrgyz/Kazakh people: tunes and melodies)과 『500 선곡집』(500 songs and kyuis of Aday, Bukey, Semipalatinsk, and the Ural Kazakhs)이고.....이 악보집들은 현재까지 카자흐스탄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자타예비치에 의해 돔브라 연주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음.)




2)비르투오소 작곡가의 출현


악보집의 편찬과 더불어 19세기 돔브라 발전의 기틀을 다진 것은 뛰어난 연주 실력을 지닌 비르투오소(Virtuoso) 작곡가들의 출현이었는데요. 이들을 중심으로 풍부한 돔브라 레퍼토리가 마련되었고, 돔브라 곡들이 음악적으로 보다 완결된 형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곡가는 돌레커레이 시가예프(Dauletkerei Shigaev, 1820~1887)와 쿠르만가치 사기르바예프(Kurmangazy Sagyrbaev, 1823~1896)인데.....두 사람의 공헌으로 돔브라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고.....이들이 남긴 곡 들은 국민 음악을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필자 개인적으로 돌레커레이와 쿠르만가치가 없었다면 돔브라가 이렇게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악기가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함.)


돌레커레이는 당대에 필적할만한 상대가 없을 만큼 기량이 뛰어난 돔브라 연주자였는데.....그가 작곡한 곡 들은 균형 잡힌 형식과 화려한 연주기교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아들들 역시 뛰어난 작곡가이자 돔브라 연주자로 활동하였는데.....돌레커레이의 대표 곡 중 하나가 아래의 “Two-Stringed qonggir” 입니다.




쿠르만가치는 일생 동안 사회주의 예술운동에 몸담았던 돔브라 음악가로서, 사회주의 사상을 자신의 음악 속에 투영하였고.....또한 연주자들로 구성된 악파를 형성하여 돔브라 기악곡의 발전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20세기의 돔브라


1)민족음악 억압 정책


19세기 러시아 제국 시대부터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의 압제에 시달렸는데.....사산족의 반란이 일어나자 정부는 반란을 진압함과 동시에 그들이 가지고 있던 돔브라를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은 붕괴되었으나 곧 소련의 지배로 이어졌고.....이 시기에 돔브라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음악은 큰 수난을 겪었습니다.(필자는 이 부분의 자료를 찾아 정리하면서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 시대가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음.) 


소련은 유목민 전통의 민족문화와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소련과 유럽의 클래식 음악을 대대적으로 도입해서 예술음악의 기준으로 삼았는데.....소련의 전문 음악인들이 카자흐스탄에 들어와 클래식 연주자로 활동하며 요직을 차지했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고유의 문화를 보유한 뛰어난 음악가들은 정통성 없는 구술음악을 하는 사람들로 그 위상이 격하 되었을 뿐 아니라 생존의 위협까지 겪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카자흐스탄의 전통음악은 ‘장식적인’ 역할로 정체성을 잃은 채 유럽 식으로 편성된 오케스트라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소련은 또한 1934년에 민속악기를 포함한 국립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주로 유럽과 러시아의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였는데.....전통악기를 대규모 서양식 오케스트라에 편성한 것은 악기 고유의 문화적 의미와 연주 방식을 퇴색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통 돔브라의 독주는 여러 개의 악기가 유니즌(Unison)으로 함께 연주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연주 과정의 백미인 즉흥 연주나 카자흐스탄의 설화를 낭독하는 부분은 서양식 오케스트라 연주 방식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모두 배제되었습니다.


2)돔브라의 부흥


1970년 무렵부터 구 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카자흐스탄의 민족 정체성이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음악문화도 전환점을 맞이 하게 되었는데.....사람들은 자민족의 문화, 역사, 고유한 특성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부흥 시키려는 열망을 갖게 되었고.....구전으로 전해오는 음악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음악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을 하는 현장조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카자흐스탄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동안 소련의 지배하에 있었기때문에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돔브라와 카자흐스탄 민족 음악이 탄압을 받았음.) 


그 결과 1980년대에 민속악기를 포함시킨 오트라르 사지(Otrar Sazy) 오케스트라가 창설되었고.....돔브라 연주자인 누르기사 틀렌디예프(Nurgisa Tlendiyev)가 1981년 에 부터 이 오케스트라의 디렉터를 역임한 사실은 돔브라의 위상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또 여기서는 시비즈기(Sybyzgy)와 사즈수르나이(Saz-surnay) 종족의 특징을 보존한 비서구 악기들이 대거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카자스흐탄의 동전이나 우표에 돔브라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는데.....이는 돔브라가 내포하는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긍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21세기의 돔브라


1)울리타우(Ulytau) 밴드


2000년대 이후 돔브라는 카자흐스탄의 방송과 인터넷 SNS를 통해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되는데.....그 중 돔브라의 인기를 확산시킨 결정적 요인은 퓨전 밴드의 결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또 울리타우(카자흐스탄어: Ұлытау)는 카자흐스탄의 퓨전 포크 메탈 밴드인데.....중앙 카자흐스탄에 위치한, 민족의 신비로운 탄생 설화를 품고 있는 지역 ‘울리타우’ 의 이름을 딴 이 밴드는 2001년 프로듀서인 키디랄리 볼마노프(Kydyrali Bolmanov)가 프로젝트 밴드로 결성한 단체이고.....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동양음악과 서양음악의 결합이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쿠르만가치, 이탈리아의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와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 1782~1840), 독일의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음악을 새로운 스타일로 융합하여 편곡하였는데.....바이올린, 전자기타, 돔브라로 구성된 울리타우 밴드는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폴란드, 미국, 터키,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순회 공연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또 2001년에는 “Adai”라는 곡으로 골든디스크상을 수상했으며.....이 곡은 <Rough Guide compilation to Music of Central Asia> 음반에도 수록되었습니다. 2006년에는 <Jumyr-Kylysh>를 발표하였고.....이 음반은 2009년 독일에서 <Two Warriors>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는데.....돔브라는 에르잔 알림베토프(Erjan Alimbetov), 전자기타는 맥심 키치긴(Maxim Kichigin), 바이올린은 알루아 마카노바(Alua Makanova)가 연주하였습니다.(울리타우 밴드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음.)


2)슈퍼 스타 카자흐스탄(SuperStar KZ)


울리타우 밴드의 출현과 더불어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 스타 카자흐스탄”은 돔브라의 인기를 확산시키는 촉매제가 되었고.....2006년 대중 음악가 리저(R. Lizer)가 “프리스타일로”(Freestailo)라는 곡을 발표했는데.....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에르나르 칼디노프(Ernar Kaldynov)라는 참가자가 돔브라를 연주하며 “프리스타일로”를 부른 것이 시청자와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또 당시의 비디오 클립은 7 백만 회 이상의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하였으며.....당시의 영상과 음향을 리믹스한 영상 또한 유튜브에서 280 만 여 회의 조회수를 보이며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3)돔브라 파티(Dombra Party)




돔브라 파티는 플래시몹(Flash mob) 형태로 거리에서 돔브라를 연주하는 방식인데.....대규모의 조직적인 플래시 몹은 아니며, 혼자서 혹은 여러 명이 공원의 벤치나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연주한 동영상을 SNS를 통해 퍼뜨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돔브라 파티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며 돔브라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일조하였습니다.(실제 유튜브와 SNS에 많은 영상들이 올라와 있음.)


4)전자 돔브라




2012년에는 전자 돔브라가 등장하면서 다른 전자 악기들과의 합주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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