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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의 역사?

◈악기 Introduction

by ♣Icarus 2020. 2. 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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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사이에 악기를 끼우고 활로 켜서 연주를 하는 비올은 16세기부터 18세기 초반까지 크게 유행했던 유럽 지역의 현악기로 비올라 다 감바 또는 감바라고도 부르며 부드럽고 낭랑한 음색이 특징인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악기 '비올' 의 역사(비올의 형성,르네상스 비올,바로크 비올,비올의 쇠퇴,비올의 부흥)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상세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비올의 형성: 15세기 후반


비올(Viol)은 1470년 경 이베리아 반도의 아라곤 왕국에서 처음 발명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당시 에스파냐에는 비우엘라(Vihuela)또는 비우엘라 데 마노(Vihuela de mano, 손(hand)의 비우엘라)라고 부르는 기타처럼 현을 뜯어서 연주하는 악기가 있었습니다.




비우엘라는 기타의 선조로 여겨지는 악기로 6 줄의 현과 프렛(Frets)이 있는 지판(Fingerboard), 평평한 뒷 판(Back)을 가졌다는 점에서 비올과 구조가 유사하였는데.....이 비우엘라에 아라곤의 무어인들이 연주하던 아랍의 찰현악기(현을 활로 마찰시켜 연주하는 현악기) 라바브(Rabab)의 활을 도입한 악기를 비우엘라 데 아르코(Vihuela de arco, 활의 비우엘라)라고 불렀습니다.




비우엘라 데 아르코는 주로 다리로 악기를 지탱하고 연주하는 감바 방식을 사용하였는데.....이 역시 라바브의 연주방식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고.....이는 오랫동안 아랍인의 지배를 받았던 에스파냐 지역에서 아랍의 악기와 음악 문화의 영향이 매우 컸음을 보여주는 예입니다.(악기사를 공부하다 보면 각 나라의 역사까지 알 수 있게 되어 참 유익한데...에스파냐가 오랫동안 아랍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필자는 이번에 포스팅을 위해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음.)   


감바 연주방식에 활을 사용하는 비우엘라 데 아르코는 아라곤 왕국 출신의 교황 알렉산더 6세(Pope Alexander VI, 로드리고 보르지아, 1431~1503)가 1492년 바티칸에 입성하며 이탈리아에 전해졌는데.....이탈리아에서는 이 악기를 비올레 다 아르코(Viole da arco) 또는 간단히 비올이라고 불렀습니다.


16세기 초반이 되자 이탈리아에는 어깨에 악기를 올리고 연주하는 브라치오(braccio) 방식을 사용하는 찰현악기들도 등장하였는데.....이러한 악기들과 구별하기 위해 에스파냐에서 건너온 감바 방식의 악기를 특별히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라고도 부르게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비올: 16세기


비올은 가톨릭 교회 세력과 귀족 사회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전역에 빠르게 전파되었는데요. 궁정에서는 전문 비올 연주자들을 고용하였으며, 귀족과 부유한 상인, 학자들이 아마추어 연주자로 비올 음악을 즐겼습니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페라라의 군주인 에스테 가의 알폰소 1세(Alfonso I d’Este, 1476~1534)가 그 대표적인 인물로, 본인이 아마추어 비올 연주자이기도 했던 알폰소는 1502년 교황 알렉산더 6세의 딸 루크레지아 보르지아(Lucrezia Borgia, 1480~1519)와의 결혼식에서 비올을 직접 연주하기도 하였습니다.(요즘 결혼식에서 신랑이 직접 축가를 부르는 것과 같은 의미임.)


이탈리아에서 비올의 형태는 크게 발전하였는데.....최초의 에스파냐 비올(비우엘라 데 아르코)이 브리지(Bridge)가 기타(Guitar)처럼 평평해서 활로 켜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면, 이탈리아의 비올은 활로 켜서 연주하기에 훨씬 편하도록 둥근 브리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벼운 몸통(Body)과 경사가 급한 어깨(Shoulder), 두꺼운 옆 판(Rib) 등 후대의 비올에서 볼 수 있는 외형을 이미 갖춘 비올이 제작되었습니다.(아이러니하게도 비올은 처음 에스파냐에서 발명되었지만...이탈리아에서 크게 발전 하였음.)


비올의 종류도 음역에 따라 다양해지면서.....높은 음역의 비올과 중간 음역의 비올, 그리고 낮은 음역의 비올을 3~6대 함께 편성하여 앙상블로 연주하는 비올 콘소트(viol consort) 음악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에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과 부유한 집안에서는 비올을 음역별로 구비해 놓는 것이 유행하였고.....연주자를 위한 비올 교본과 비올 콘소트를 위한 악보집이 출판되었습니다.




비올과 비올 콘소트 음악은 오래지 않아 알프스를 넘어 유럽 대륙과 바다 건너 영국까지 전해졌는데.....특히 영국에서 궁정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1540년경 헨리 8세의 궁정에 소개된 이후 비올은 영국 음악의 중심 악기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또 왕과 귀족이 즐기는 우아한 악기라는 이미지와 함께 비올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도 고귀함을 상징하는 악기로 묘사되곤 하였습니다.


존 로즈(John Rose, ~1611) 등의 비올 제작자들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훌륭한 악기를 만들었으며.....윌리엄 버드(William Byrd, 1540년경~1623), 존 다울런드(Jhon Dowland, 1563~1626), 올랜도 기번스(Orlando Gibbons, 1583~1625) 등의 영국 작곡가들은 많은 비올 콘소트 음악을 남겼습니다.


16세기 말 이탈리아에서는 새로운 양식의 비올 음악이 나타났는데.....바스타르다(bastarda: ‘변종’이라는 뜻)라고 부르는 양식으로, 즉흥적으로 선율에 풍부한 장식을 넣고 리듬을 더 잘게 분할하여 화려하게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스타르다 양식은 주로 베이스 비올(Bass viol) 독주로 연주되었고.....이를 위해 고난도 기교를 좀 더 수월하게 연주할 수 있는 작은 베이스 악기인 비올라 바스타르다(Viola bastarda)라는 악기가 새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비올라 바스타르다는 유럽 대륙과 영국에도 큰 영향을 끼쳐, 바로크시대(17세기~18세기 중반)에는 영국의 디비전 비올(Division viol) 음악과 프랑스의 비르투오소 베이스 비올 음악이 발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비올이 전 유럽에 전파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스타르다' 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자는 바스타르다 양식을 상당히 높게 평가함.) 


◈바로크 비올: 17세기~18세기 중반


바로크 시대에도 비올은 여전히 중요한 악기로서 유행하였으나.....16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새롭게 등장한 바이올린(Violin)과의 경쟁으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지는 못하였는데.....바이올린은 비올보다 큰 음량을 낼 수 있고 표현력도 더 뛰어났으며, 고난도의 기교를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악기였기 때문에 많은 음악가들과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바이올린의 영향으로 비올의 구조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16세기의 비올이 뒷 판의 가로대(Crossbar)를 이용해 몸통의 공명을 부분적으로 돕는 방식이었던 데 비해.....17세기의 비올은 바이올린의 음향 구조를 도입하여 비올 내부에도 베이스 바(Bass bar)와 사운드 포스트(Soundpost)를 만들어 몸통 전체의 공명을 강화하였습니다. 또한 더 풍부한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악기 몸통의 나무판을 더 얇고 가볍게 깎았는데.....비르투오소 연주를 하기에 더 편하도록 목(Neck)을 더 얇게, 지판은 뒷 판 쪽으로 더 기울어지게 만들었으며, 브리지가 더 높아지고 경사도 급해져서 다른 현의 간섭 없이 소리 내고자 하는 현 만을 연주하기도 쉬워졌습니다.




활도 16세기의 활과 달라졌는데.....활의 포인트(머리) 부분이 길어져서 더욱 가볍고 우아한 표현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활 대가 이전보다 직선에 가깝게 만들어지면서 활 털의 장력을 유지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에.....빠르고 다양한 활 쓰기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영국의 헨리 제이(Henry Jaye, 1580년 경~1641년 경)와 버락 노먼(Barack Norman, 1679년 경~1740년 경), 프랑스의 미셸 콜리숑(Michel Colichon, 1666~1697)과 니콜라 베르트랑(Nicolas Bertrand, 1563~1626) 그리고 독일 지역의 야콥 슈타이너(Jacob Stainer, 1619년 경~1683), 요아힘 틸케(Joachim Tielke, 1641~1719)와 같은 훌륭한 비올 제작자들이 등장하였고.....이들의 악기는 아직도 일부 남아 있어서 박물관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현대 비올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비올 음악 역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어, 비올 콘소트 음악이 점차 쇠퇴하는 대신 비르투오소 독주 비올 음악이 유행하게 되었는데.....특히 17세기 후반과 18세기에는 베이스 비올 음악이 발전하였고.....고 음역의 트레블 비올(Treble viol)은 이미 바이올린에 밀려 쇠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다양한 악기를 편성하는 기악 음악에서도 낮은 음역에는 베이스 비올을, 높은 음역에는 바이올린을 함께 편성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영국에서는 비르투오소 베이스 비올 연주를 위해 크기가 작은 베이스 비올의 일종인 리라 비올(Lyra viol)과 디비전 비올이 새로 등장하여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독일 지역에서도 비올의 인기는 여전해서 하인리히 쉬츠(Heinrich Schütz, 1585~1672)와 바흐(J. S. Bach, 1685~1750) 같은 대 작곡가들이 종교 음악에 베이스 비올을 편성하였으며.....바흐를 비롯하여 요하네스 셴크(Johannes Schenck, 1660~1712), 게오르그 필립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 카를 프리드리히 아벨(Carl Friedrich Abel, 1723~1787)과 같은 작곡가들은 소나타와 실내악 등 다양한 비올 음악을 남겼고.....아벨은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던 18세기 비올 최후의 대가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생트 콜롱보(Sainte-Colombe, 1640년 경~1700), 마랭 마레(Marin Marais, 1656~1728)와 같은 훌륭한 비올 연주자들이 등장하여 비올 음악의 전성기를 꽃피웠는데.....생트 콜롱보는 은(silver)을 감은 낮은 A현을 도입한 7 현 베이스 비올을 고안하여 더 넓은 음역을 연주할 수 있게 하였고.....화음 연주와 장식음이 풍부한 비르투오소 비올 음악을 남겼습니다. 또 생트 콜롱보의 제자이자 루이 14세 궁정의 비올 연주자로도 명성을 누렸던 마랭 마레는 스승의 비르투오소 비올 음악을 더욱 발전시켜 다양한 장식음과 활 쓰기 기법으로 비올의 표현력을 극대화 하기도 하였습니다.




비르투오소 음악이 등장했음에도 비올은 여전히 아마추어 연주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루이 14세, 루이 15세 궁정의 왕족과 귀족들도 아마추어 비올 연주자로 활약하기도 하였는데.....루이 15세의 딸 앙리에트 공주(Anne Henriette de France, 1727~1752)도 훌륭한 아마추어 비올 연주자로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앙리에트 공주는 아마추어 비올 연주자였지만...실제로는 프로에 버금갈 정도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함.)


또한 프랑스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와는 달리 고음역 비올의 인기도 18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는데.....트레블 비올보다 더 작고 음역이 높은 파르드쉬 비올(Pardessus de viole)이라는 악기가 등장하여 귀부인들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비올의 쇠퇴: 18세기 후반


18세기 후반 이후는 서양 음악사에서 사회 문화적 요인에 의한 음악 양식의 변화가 뚜렷이 나타났던 시기였는데.....화려한 귀족 중심의 음악 문화가 쇠퇴하고 음악 청중의 계층이 넓어지면서.....음악을 연주하는 음악 회장도 많은 청중을 수용할 수 있도록 커졌으며, 대중적인 음색과 선율이 대두되었습니다. 또 새로운 음악 청중은 우아하고 섬세한 소리가 나는 비올보다는 음량이 크고 표현력이 좋은 바이올린을 선호하였습니다.(물론 바이올린이 음량이 크고 표현력이 좋아서 선호하기도 했었지만...그 내면을 살펴보면 비올이 이미 귀족들 만을 위한 악기로 낙인 찍혀 버려서 일반 대중들에게 반감을 많이 샀었음.)


17세기 콘소트에서 부터 이미 바이올린이 트레블 비올의 자리를 대신해 왔는데.....18세기 중반에는 베이스 비올마저 첼로에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하면서 비올은 눈에 띄게 쇠퇴하였다. 또 바리톤(Baryton)이나 아르페지오네(Arpeggione) 등 비올을 변형시킨 악기들이 새로 출현하였으나, 크게 관심을 끌지 못하고 이내 사라졌습니다. 특히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 첼로로 구성되는 바이올린 족 현악 4 중주 편성이 실내악과 오케스트라에서 크게 유행하면서.....비올은 특별한 효과를 위한 악기로 가끔 사용되다가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결국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비올의 부흥: 20세기 말 이후


오늘날 비올은 또 다시 많은 전문 연주자와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한 세기 가까이 사라졌던 비올은 19세기 말 아널드 돌메치(Arnold Dolmetch, 1858~1940)라는 음악 학자에 의해 발굴되면서.....20세기 이후 고 음악(Early music)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연주되어 왔습니다.


1933년 스위스의 첼리스트 아우구스트 벤칭거(August Wenzinger)는 스콜라 칸토룸 바실리엔시스(Schola Cantorum Basiliensis)라는 고음악 연구소를 설립하여 비올 연구와 연주,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며.....1948년 영국에는 비올라 다 감바 소사이어티라는 단체가 창단되어 비올 연주자들과 학자들, 그리고 애호가들을 위한 네트워크로 성장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토대로 비올 연주 법 전통이 부활하였고.....제이 비올 콘소트(Jaye Consort of Viols, 1962년 창단), 프렛워크(Fretworks, 1985년 창단), 판타즘(Phantasm, 1994년 창단) 같은 비올 콘소트 뿐 만 아니라.....빌란트 쿠이켄(Wieland Kuijken, 1938~), 조르디 사발(Jordi Savall, 1942~), 로렌스 드레이퍼스(Laurence Dreyfus, 1952~) 같은 비올 독주자들의 연주회와 음반 작업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필자 개인적으로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하는데...악기에 대한 역사적 편견 때문에 그냥 묻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악기임.) 


악기 제작 기법 분야의 전통도 부활하여 바로크 비올을 모델로 하는 훌륭한 현대 비올이 지금도 제작되고 있고.....또한 세계 유명 음악 학교의 학위 과정으로도 비올 전공이 개설되어 있으며.....조지 벤저민(George Benjamin, 1960~), 존 태버너(John Tavener, 1944~2013), 탄둔(譚盾, 1957~) 등 많은 현대 음악 작곡가들이 비올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는 등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 하고 있습니다. 또 비올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꽃피웠던 방대한 음악 작품과 아름다운 음색을 바탕으로 점점 현대 음악 청중들의 관심을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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