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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시코드의 흥망성쇠

◈악기 Introduction

by ♣Icarus 2020. 2. 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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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시코드는 14세기경 이탈리아 또는 플랑드르 지역에서 고안된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건반 악기로 피아노가 상용화되기 이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독주 및 합주 악기였는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약간은 특이하다 볼 수 있는 하프시코드의 흥망성쇠(기원과 초기 하프시코드, 하프시코드의 발전과 전성기, 하프시코드의 쇠퇴와 부활)에 대해 상세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프시코드의 기원과 초기 하프시코드


호른보스텔-작스 분류에서 하프시코드는 현명악기(줄을 뜯어서 소리내는 악기)중에서도 상자 형 치터에 속하는데.....치터란? 고대 그리스의 뜯는 현악기인 키타라에 대한 독일식 명칭으로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키타라를 하프시코드의 원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둘 다 현을 뜯는 악기이지만 키타라는 손가락이나 채로 현을 뜯는 악기인 반면에 하프시코드에서는 복잡한 건반 장치를 통해 현을 뜯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하프시코드는 14세기에 이탈리아 혹은 플랑드르에서 고안한 것으로 추정될 뿐 악기의 발생에 관한 정확한 자료나 문헌이 남아 있지는 않은데.....하프시코드의 구조에 관한 현존하는 최초의 문헌은 악기 메커니즘에 관심이 많았던 프랑스 과학자 아르노(Henri Arnault de Zwolle)의 1430년 논서에 실린 클라비심발룸의 설계도입니다.('클라비심발룸' 의 설계도가 의외로 상당히 정밀하게 그려져 있어서 놀랐음.)


현존하는 최초의 하프시코드는 1470년 경 독일 울름에서 제작된 클라비시테리움이란 악기로 영국 런던 왕립음악학교에 소장되어 있는데.....이 악기의 구조는 아르노의 클라비심발룸 설계도와도 유사하고 건반은 41개이며 현이 장착되는 프레임이 건반에 대해 수직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클라비시테리움은 후대의 악기에 비하면 크기가 작고 기계 장치의 구조도 단순하지만 당시까지 발전된 건반악기 장치 구조를 볼 때 학자들은 하프시코드가 1400년 이전에 제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이를 뒷받침해주는 최초의 문헌 자료는 1397년 이탈리아 파두아의 한 법정 문서인데.....여기에 클라비쳄발룸이라고 하는 악기의 발명가에 관한 분쟁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명품 하프시코드의 발전과 하프시코드의 전성기


16세기 하프시코드 제작을 대표하던 지역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 이 시기 이탈리아의 여러 귀족들이 베네치아에서 제작된 하프시코드를 5대 이상 소장했다는 기록이 있으며.....현존하는 16세기 이탈리아 악기들도 실제 베네치아 공방의 악기들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였고.....베니스의 유명 제작자로는 페사로,트라순티노 가문과 파도바노 가문이 있었습니다.(서양 악기사를 공부하다 보면 이탈리아가 유럽의 여러 악기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음.)


본격적인 명품 하프시코드 제작은 현재의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해당하는 플랑드르 지방에서 시작되었는데.....명품 바이올린 하면 스트라디바리우스 가문이 떠오르듯이 이에 해당하는 명품 하프시코드 제작자로는 앤트워프에 공방을 두었던 뤼커르스 가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플랑드르 악기의 명성은 16세기 후반 한스 뤼커르스때 부터 시작하여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이어졌으며.....뤼커르스 하프시코드는 동시대와 후대 제작자들의 모델이 되었고.....뤼커르스 공방에서는 한 해에 35~40대의 악기를 제작했는데 생산된 악기들은 케이스에 고유 번호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뤼커르스 하프시코드는 디자인이 아름답고 정교했을 뿐 만 아니라 음향의 공명이 풍부하고 모든 음역에 걸쳐 명료하고 균일한 음을 낸다는 점에서 명성이 높았었는데.....특히 동시대 이탈리아 악기에 비해 음색이 더 부드럽고 잔향이 오래 지속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또한 뤼커르스 가문은 2단 건반 하프시코드를 처음으로 제작함으로써 하프시코드로 음색과 음량의 다양한 조합과 대조를 구현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필자 개인적으로 하프시코드 역사에서는 뤼커르스 가문이 최고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함.) 



화려한 외관을 가진 뤼커르스 악기들 중에는 뚜껑에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얀 브뤼겔 같은 유명 화가가 그림을 그려 넣은 것들도 있었는데.....명화가 그려진 악기는 가격도 그 만큼 상당히 높았지만 안타깝게도 루벤스가 그림을 그려 넣은 악기들은 현재 모두 소실되었으며.....브뤼겔의 그림이 그려진 악기는 딱 한 대 남아있습니다.(16~17세기에 제작된 뤼커르스 악기는 90 퍼센트 이상 소실되고 현재 단 100 여 대 만 남아있다고 함.)


뤼커르스 가문의 가업은 한스 뤼커르스의 외손자 얀 쿠셰에게도 계승되었는데 쿠셰 가문의 하프시코드 역시 앤트워프 명품 악기로서 명성을 얻었고.....17세기 말의 쿠셰 하프시코드는 5 옥타브에 이르는 넓은 음역을 갖게 되었습니다.


앤트워프 공방의 명품 하프시코드들 가운데 원형 그대로 보존된 악기가 드물기 때문에 후대의 제작자들은 이러한 악기들을 리모델링 하였는데.....리모델링을 할 때 가장 중점이 되는 요소는 건반을 추가하여 음역을 넓히는 것이었고.....이때 악기의 프레임은 원래 크기를 유지하였으나 대신 각 건반의 너비가 약간씩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18세기 전반 파리에서 뤼커르스 하프시코드는 일반적인 새 악기 가격의 4배 이상을 호가할 만큼 가치가 상승하였는데.....예를 들어 프랑스 왕실 전속 제작자이던 파스칼 타스캥은 1646년 제작된 뤼커르스 악기를 1780년에 리모델링 하였고.....현재 이러한 명품 악기를 식별할 때는 두 제작자의 이름을 모두 밝히게 되어있습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17~18세기에 플랑드르 악기의 리모델링이 많았을 뿐 아니라 블랑셰,앙쉬,타스캥 가문 등에서 제작한 악기들도 명품 악기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는데.....악기의 음역이 확장되고 여러 벌의 현이나 여러 단의 건반들을 장착하게 되는 과정은 동시대 하프시코드 음악 서법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640년대에서 1780년대 사이에 '프랑스 클라브생 악파' 의 계보가 형성되었는데.....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루이 쿠프랭,자크 샹피옹 드 샹보니에르,엘리자베스 자케 드 라 게르,프랑수아 쿠프랭,장 필리프 라모,장 바티스트 포르크레를 들 수 있겠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 지역에서도 함부르크에서 제작한 하프시코드가 명품으로 평가 받았었는데.....함부르크 하프시코드는 당시 독일 중부에서 제작된 하프시코드에 비해 더 비싸고 외관도 화려하였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라이프치히에 있을 때 5대의 하프시코드,1대의 스피넷,2대의 류트 하프시코드를 소장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제작자는 확인 할 수 없으나 바흐도 함부르크 하프시코드를 1대 소장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함부르크 하프시코드는 뤼커르스 하프시코드를 모델로 삼았으며 음향판과 구조가 특히 뤼커르스 하프시코드와 유사하였습니다.(역시 뤼커르스 하프시코드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임.)


반면 함부르크 악기의 굴곡 측면과 꼬리 부분은 뤼커르스와는 다른 고유한 디자인으로 제작되었는데.....18세기 함부르크 공방을 대표하는 제작자들로는 플라이셔 가문,하스 가문,크리스티안 젤 등이 있고.....이들의 자체 제작 악기들과 뤼커르스 리모델링 악기들이 모두 현존하고 있습니다.


제작자가 확실한 바흐의 하프시코드로는 쾨텐 궁정 시기에 사용했던 베를린의 제작자 미트케의 악기가 있는데.....바흐는 이 악기를 염두에 두고 하프시코드 독주가 특히 두드러지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5번을 작곡하였고.....동시대 프랑스에서처럼 독일 지역에서도 8' 현 두 벌과 4' 현 한 벌로 총 세 벌의 현이 장착된 2단 건반 악기가 일반적이었는데.....드물게는 한 옥타브 아래 음역인 16' 현이 장착된 악기도 있었습니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도 17세기 뤼커르스 하프시코드를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그 밖에 18세기 영국의 대표 제작자들인 커크만과 셔디의 악기들을 연주했다는 기록도 나왔습니다. 두 제작자 모두 뤼커르스 악기를 모델로 삼았었는데.....특히 셔디는 레지스터 조작을 돕는 페달 장치,점진적인 다이내믹을 표현하는 베니스 식 스웰(현 위에 블라인드를 장착하여 열었다 닫았다 하는 장치)과 같은 새로운 장치를 발명하면서 최저음역을 F음에서 더 아래 C음까지 확장하였습니다.


화려하고 풍부한 음향을 지닌 셔디 하프시코드는 영국 왕실에 납품되었을 뿐 아니라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도 하였는데.....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제,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하이든,클레멘티도 이 악기를 소장하였다고 합니다.


◈피아노의 발전과 하프시코드의 쇠퇴


1700년 경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에 고용된 하프시코드 제작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피아노를 발명하였는데.....그가 이 악기에 처음 붙였던 명칭은 '강약을 내는 편백나무 쳄발로' 였습니다.




1760년대에 이 새로운 건반악기가 유럽 전역에서 상용화 되면서 하프시코드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였는데.....이제 궁정과 교회에서 하프시코드 대신 피아노를 구매하고 주로 연주하는 시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1810년대에 이르자 하프시코드는 오페라 레시타티브의 반주 악기로 가끔 사용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연주회에서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는데.....


교회와 궁정에 소장되어 있던 수 많은 하프시코드는 안타깝게도 폐기 되거나 전시 용 가구가 되었고.....악기의 몸체가 보존된 경우에도 내부 관리를 전혀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서 천연 소재인 현이나 플렉트럼이 부러지거나 삭아서 사라지는 등 연주가 불가능 할 만큼 손상되고 말았습니다.(물론 피아노의 발명은 반가운 일이지만...그로 인해 수 많은 하프시코드가 폐기되고 손상되었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프시코드의 부활


하프시코드의 부활은 19세기 후반 음악학의 역사주의적 경향과 맥을 같이 하는데.....작곡가의 의도대로 연주하려는 관점에서 후대의 주관적인 편집을 배제한 원전 악보들이 편찬되었고.....고음악 레퍼토리가 늘어났으며 옛 악보를 해석하는 방법도 연구되었는데요. 이러한 학문적 연구를 바탕으로 19세기 말 고음악을 고악기(시대 악기:작곡 당시에 사용되었던 악기)로 연주하려는 시도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작곡 당시의 하프시코드 음향을 복원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하프시코드 복원의 대표적인 개척자로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반다 란도프스카는 J.S 바흐의 작품을 비롯한 바로크 건반 음악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유럽의 악기 박물관들에서 하프시코드를 접하고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1903년 파리에서의 하프시코드 연주회를 시작으로 유럽 연주 여행에 나섰고.....1913~1919 년에는 베를린 고등음악원에서 하프시코드 교수로 재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란도프스카가 프랑스의 피아노 회사인 플레옐사와 함께 제작한 하프시코드는 철제 프레임과 페달 등 피아노 장치를 부착한 악기로써 고증이 잘 되었다고는 볼 수 없는 혼합적 악기였습니다.




또 다른 개척자였던 아놀드 돌메치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연주자 겸 악기 제작자로 활동하였는데.....브뤼셀 음악원과 런던 왕립음악학교에서 수학한 돌메치는 대영 박물관의 고악기 소장품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고악기 연구와 복원에 매진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1894년 클라비코드를, 1896년 하프시코드를 제작하고 연주법을 연구하였으며.....1925년 해즐미어 고음악 페스티벌을 창설하기도 하였는데.....돌메치가 제작한 악기는 란도프스카의 악기보다는 고증이 잘 되었다고 평가 받고 있지만 그 역사적 정통성은 여전히 미비한 상태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20세기 전반에 제작된 이러한 하프시코드들이 이후 학계의 비판을 받게 되면서.....1950년 이후에는 하프시코드 원래의 형태와 음색을 역사적으로 복원하려는 시도가 더욱 활발하게 나타나게 되었는데요.


학자들과 악기 제작자들은 박물관에 소장된 고악기들의 구조와 재질을 보다 과학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역사에 바탕을 둔 복원을 추진하였고.....이 역사적 악기들의 음향은 1970년대 유럽과 미국의 라디오 방송과 음반 시장을 발판 삼은 '고음악 운동'의 붐을 타고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필자 개인적으로 하프시코드 음색을 참 좋아하기 때문에...다시 부활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부활한 하프시코드의 음색은 현대 작곡가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고.....이러한 하프시코드 음악의 대표작으로 마누엘 데 파야의 '하프시코드,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이올린,첼로를 위한 협주곡' 을 들 수 있는데.....이 작품의 초연에서 란도프스카가 하프시코드 연주를 하였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현대 하프시코드 곡으로 죄르지 리게티의 'Continuum'을 들 수 있는데.....이 작품은 동시대 하프시코드 연주자 앙투아네트 비셔에게 헌정되었습니다. 위의 두 작품들은 하프시코드의 음색을 현대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표현과 테크닉을 선보인 20세기 주요 건반 음악 문헌으로 현재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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