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게 연주하라는 의미의 피아노와 세게 연주하라는 의미의 포르테가 합쳐진 '피아노포르테' 의 줄임말을 악기명으로 쓰고 있는 악기가 바로 피아노인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피아노의 탄생(제 1기 1770년대 이전)과 변천사(제 2기 1770년대~1825년,제 3기 1825년~현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상세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1기 1770년대 이전(피아노의 탄생)
피아노는 17세기 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피아노는 제작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가 처음 발명한 것으로 추측되어지고 있으며.....당시 크리스토포리는 피렌체를 대표하는 가문 '메디치' 를 위해 건반 악기를 제작하고 있었는데.....피아노의 전신 하프시코드,스피넷 등을 제작하던 크리스토포리는 1689년 경 피아노 제작에 착수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1710년 경에는 피아노 3대를 완성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당시 크리스토포리가 제작한 피아노는 후대의 피아노와 비교하면 비교적 가볍게 제작되었으며 해머의 크기도 작았다고 전해지고 있는데.....당시 크기가 큰 하프시코드가 5 옥타브가 넘는 소리를 낸 것에 비교하면 4개의 옥타브로 된 이 피아노는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악기였습니다.
이후 크리스토포리의 제자 '지오반니 페리니' 가 스승의 뒤를 이어 피렌체에서 피아노를 제작하였는데.....피렌체에서 활동하던 피아노 제작자들이 이베리아 반도(이탈리아가 위치하고 있는)에 까지 진출하게 되면서 크리스토포리의 디자인은 그 명맥을 계속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크리스토포리가 만든 피아노의 액션 구조는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의 액션 구조와 달랐는데.....하프시코드는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구조였지만 크리스토포리의 액션은 해머로 현을 때리는 구조였기 때문에.....연주자는 음량을 조절할 수 있었고 이전보다 음의 크기도 커졌습니다.(이런 피아노의 장점때문에 하프시코드가 자연스럽게 쇠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음.)
크리스토포리의 피아노 액션
하지만 이 해머가 연주하지 않은 다른 현을 진동시키는 문제가 발생하여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댐퍼가 고안되었는데.....연주되지 않는 현의 울림을 막아주는 댐퍼는 공명에 의한 이상한 음의 발생을 막아주었고.....또한 현을 때리고 난 해머가 반사되어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건반과 해머 사이에 잭을 넣어 해머가 현과 붙어있지 않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크리스토포리의 해머 액션 구조는 오늘날과 같은 피아노의 시초로 이후 피아노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독일에서는 라이프치히 남쪽에서 처음으로 피아노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데.....건반 악기 제작자 '고트프리트 질버만' 이 1730년대 초에 피아노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질버만 또한 크리스토포리의 디자인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질버만의 피아노를 접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높은 음역에 있어서 너무 약한 소리가 나서 연주하기 어렵다." 라고 불평을 늘어 놓았다고 합니다.
질버만의 피아노는 크리스토포리의 피아노와 비슷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당시 독일 하프시코드의 모습과 비슷했으며.....음역 또한 더욱 넓었는데 새로운 피아노에 만족하지 못했던 바흐도 훗날 질버만의 후기 피아노는 인정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독일에서는 1760~1770년대 까지도 하프시코드와 크라비코드가 건반 악기로써 여전히 인기가 있었으며 피아노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질버만의 제자인 '요하네스 줌페' 는 1760년경 영국 런던에 자리를 잡고 크리스토포리의 액션을 이용한 '스퀘어 피아노' 를 개발하였는데.....직사각형 모양의 스퀘어 피아노는 이미 독일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 피아노는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필자가 보기에는 피아노의 역사에서 '요하네스 줌페' 가 정말 중요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함.)
당시 하프시코드나 그랜드 피아노보다 비용 면에서 훨씬 저렴하고 건반 터치에 있어서 섬세했던 줌페의 스퀘어 피아노를 위해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는 소나타를 작곡하기도 하였는데.....하지만 줌페의 피아노는 해머가 현을 때리고 돌아오도록 하는 이탈 구조 역할을 할 장치가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2기 1770년대~1825년
1770년경 영국에서는 스퀘어 피아노가 많은 음악 애호가에게 사랑 받는 악기가 되었는데.....작은 사이즈와 디자인 면에서 뛰어났던 이 악기는 그 후로 약 100 년 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스퀘어 피아노는 장식 면에서도 전혀 손색이 없어 가정용 악기로도 자리매김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많은 애호가들이 스퀘어 피아노를 찾으면서 더욱 다이나믹한 피아노를 원하게 되었고.....이러한 요구에 따라 영국식 그랜드 피아노가 제작되었는데.....'아메리커스 배커스' 와 '존 브로드우드' 가 영국 그랜드 피아노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브로드우드는 1788년 이후 줌페의 피아노를 모델로 삼아 그랜드 피아노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는데.....보다 화려하고 깨끗한 음색으로 주목 받은 브로드우 는 건반수가 늘어난 6 옥타브의 피아노를 생산하기에 이르렀으며.....이후 영국 런던의 피아노 시장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피아노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보다 큰 음량을 원하는 애호가들의 요구에 따라 필연적으로 피아노에 더 많은 현이 추가 될 수 밖에 없었지만.....그러나 예상보다 더 많은 현이 추가되면서 피아노는 더 높은 장력을 받게 되었고.....이를 견디기 위해 피아노의 크기도 커지게 되었는데요.
밥콕의 철골 프레임
그러나 과도한 장력을 견디지 못하는 피아노는 틀어지고 휘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여 이러한 구조적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피아노에 철재를 접목시키는 방안이 고안되었는데.....그것은 현을 묶는 힛치 핀과 음향판 사이에 쇠판을 덧붙여 피아노 외장의 틀어짐을 막으려 한 것이었고.....결국 미국의 피아노 제작자인 '알페우스 밥콕' 에 의해 1825년 현의 높은 장력을 견딜 수 있는 철골 피아노까지 개발되었습니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리스트' 를 떠오르게 하는 '세바스티앙 에라르' 는 줌페의 스퀘어 피아노에 기초한 그랜드 피아노를 개발하게 되는데.....에라르는 오늘날 레피티션이라 부르는 장치가 포함된 이중 이탈구조를 고안하였고.....이것은 건반을 누른 뒤에 건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뒤에도 다음 타현이 가능한 구조로 이로써 피아노 연주 테크닉이 더욱 화려하게 발전하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에라르 피아노는 1808년에 처음 생산되었으며 이후 1821년에 영국에서 수정 보완한 그랜드 피아노로 특허 등록을 하였음.)
한편 독일식 피아노의 전통을 이은 비엔나의 피아노는 1770년대 부터 1830년대 까지 유럽에서 주류를 이루게 되는데.....크리스토포리와 질버만이 기술적으로 뛰어난 피아노를 선보였지만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하지 못한 것에 반해.....'요한 안드레아스 슈타인' 은 자신의 회사에서 생산한 독일식 액션 피아노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비엔나식 액션 이라고도 하는 슈타인의 액션은 해머의 바운드로 인한 이중 터치를 방지하는 기능을 특징으로 20세기 초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하였고.....비엔나 액션을 사용한 피아노는 같은 시기 영국과 프랑스의 피아노보다 섬세하다는 장점을 지녔으며.....가볍고 부드러운 특징도 가졌습니다.('요한 안드레아스 슈타인' 은 이 비엔나 액션 피아노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는데...실제 상당히 편리하게 잘 만들기도 하였음.)
음악도시 비엔나에서 활동한 모차르트와 베토벤 모두 이 비엔나 피아노로 음악을 작곡한 수혜자라 할 수 있는데.....비엔나의 피아노는 부드럽고 우아한 사운드와 함께 구조 또한 가벼웠으며.....오늘날의 피아노와는 다르게 비엔나의 피아노는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이 서로 바뀌어 배치되었다는 점도 눈에 띄는 차이점입니다.
하지만 섬세한 음향을 지닌 비엔나 액션은 보다 극적인 표현을 요구하는 낭만주의 작곡가들과 피아니스트에게는 적합하지 않았는데.....보다 큰 음량과 표현력 풍부한 소리를 원했던 음악가들의 요구에 따라 해머의 무게는 점점 증가하였고 섬세한 음향이 장점이었던 비엔나 피아노는 점점 음악 청중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었습니다.(필자가 보기에도 외면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함.)
◈제 3기 1825년~현재
1735년경 부터 1850년경 까지는 업라이트-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스퀘어 피아노가 제작되었는데.....현을 수평으로 제작하는 그랜드 피아노와 달리 현을 수직으로 제작하는 업라이트 피아노의 경우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 당시의 업라이트-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스퀘어 피아노는 음향판의 사이즈가 커서 울림이 좋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일반 가정에서 사용하기에는 사이즈가 너무 컸고 나무 장식이 상당히 거추장스러워서 1850년대 이후에는 결국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 넣은 이 당시의 피아노는 외장에 있어서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 악기로 현재는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크기가 작고 비용 면에서 좀 더 경제적인 피아노를 필요로 함에 따라 업라이트 피아노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는데.....1800년에 처음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업라이트 피아노는 이후 계속 발전하였고 현을 교차시키면서 크기를 더욱 작게 할 수 있었습니다.(필자 개인적으로 '업라이트 피아노' 의 제작도 상당히 혁신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함.)
1811년 '로버트 워넘' 은 오늘날과 같은 업라이트 피아노를 생산한 제작자로 1830년경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구조의 진보한 피아노를 선보였는데.....그 이후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한 워넘 업라이트 피아노는 1850년에만 약 5만대가 생산된 정도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피아노 제조사로 꼽히는 '스타인웨이' 에서는 1859년 저음부 현과 고음부 현을 교차시키는 교차식 현을 개발하였는데.....이것은 피아노에 더 많은 현을 장현하고 싶다는 애호가들의 요구를 따른 것으로 피아노 제조사는 현의 수가 증가하는데 따른 장력 증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였는데요.
넓은 옥타브를 위해 더 많은 현을 장현해야 했고.....현의 수가 증가하면서 높은 장력을 견딜 수 있는 견고함과 더 큰 해머 그리고 강한 액션의 설계가 요구되었습니다. 이러한 요구를 모두 만족시켰던 것이 바로 스타인웨이의 교차식 설계로.....이로 인해 옥타브를 늘릴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고.....이후 스타인웨이는 총철골과 교차식 현의 피아노를 제작하는 피아노 제작사로서 현재까지도 최고의 피아노 제조사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현재는 두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스타인웨이 피아노' 가 독보적으로 좋은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