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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아라비안나이트 카눈의 역사

◈악기 Introduction

by ♣Icarus 2020. 2. 1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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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카눈' 은 '천일야화' 와 파라비의 '위대한 음악 논서' 그리고 13세기 에스파냐 서정시 '성모마리아 찬가' 등에 기록이 남아있는 중동 지역에서 발원한 악기로.....발생 시기나 발생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역사가 상당히 오래된 악기인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악기 '카눈' 의 역사(기원과 변천,전파 그리고 개량)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상세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카눈의 기원


카눈은 역사가 매우 오래되어 발생 시기나 발생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카눈의 기원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어 지는데요.


첫 번째는 페르시아 제국을 그 기원으로 보는 견해인데.....'천일야화' 를 포함해서 카눈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것이라는 사실을 페르시아 기원설의 근거로 들고 있고.....현재의 이란을 1935년에 국호를 개정하기 이전까지 페르시아라고 불렀기 때문에 드물게는 이란의 전통 악기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아시리아 기원설인데.....비록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페르시아 제국에 앞서 오리엔트 지역을 통일했었던 아시리아 제국 시대에 카눈이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이고.....도상학적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오늘 날과 같은 형태의 카눈이 아시리아 제국 시절부터 있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카눈의 원형이 고대 국가인 아시리아에 이미 존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두 번째 견해에 동의하고 있음.)


 


마지막으로 음악학자 '쿠르트 작스' 는 자신의 저서 '악기의 역사' 에서 카눈의 별칭이 '이집트의 카눈' 을 뜻하는 '카눈 미스리' 또는 '카눈 마스르' 였던 것으로 보아 이집트에서 기원한 악기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처럼 학자들의 견해가 세 가지로 나뉘어지기는 하지만.....페르시아,아시리아, 이집트의 문화는 서로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아시리아와 페르시아 제국은 모두 과거 오리엔트 지역을 통일했었던 제국들이며.....또 그 기간 동안 이집트는 아시리아의 간접 지배(기원전 7세기)와 페르시아의 직접 지배(기원전 6~5세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이러한 이유로 사실 어느 나라에서 카눈이 발생되었는 지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음.) 


따라서 이 거대한 문화권 안에서 특정 지역을 카눈의 발생지로 지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며.....다만 분명한 것은 카눈이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 지역에서 발원한 악기라는 사실입니다.


◈카눈의 변천과 전파(10세기~19세기)


이러한 이유로 비록 카눈의 역사와 변천 과정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현존하는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는 있는데.....카눈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기록 중 대표적인 것이 '천일야화' 이고.....10세기 경 엮은 것으로 추정되는 '천일야화' 에서 153~169일 째 밤에 해당하는 '알리 이븐 바카르와 샴스 알 나하르의 이야기' 의 마지막 장면에 카눈이 언급되는데요.(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천일야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라비안나이트' 로 더 잘 알려진 책으로 필자도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음.)



가장 오래된 '천일야화' 필사본


그것은 슬픈 사랑에 관한 시를 들은 후궁 '샴스 알 나하르' 가 깊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사망하자.....왕이 카눈을 포함한 즐거움을 주는 모든 악기를 부숴 버리라고 명령한다는 내용이고.....이 시기의 카눈은 세워서 연주하는 악기로 묘사되어 있으며 그것으로 보아 오늘 날과 같은 공명통 형태와 악기를 눕혀서 연주하는 관습은 더 나중에 확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철학자들의 논서에도 카눈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그중 가장 오래된 기록은 페르시아 철학자 '파라비' 의 '위대한 음악 논서' 이고.....아랍-페르시아 문화권에서 저술 된 음악에 관한 저서 중 가장 방대한 것으로 손꼽히는 이 책은 9세기 후반 또는 10세기 전반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우드,카눈 등 당시 페르시아에 존재하던 많은 악기에 관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라비


한편 파라비는 투르키스탄 지역에서 태어나 시리아 알레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철학자로.....아랍-페르시아 음악에 관한 방대한 저서를 남겼고.....그 위대한 업적 때문인지 아랍-페르시아 문화권에서는 파라비가 카눈을 발명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사실 신빙성은 없는 이야기입니다.(그런데 그 만큼 중동 지역에서는 고전 음악 하면 많은 사람들이 파라비를 이야기 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위인임.)


비슷한 시기에 페르시아의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이븐 시나' 역시 사람의 목소리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발현 악기라고 언급하면서 특히 우드와 카눈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븐 시나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연주하는 악기였던 카눈은 동서의 문화 교류와 8세기 부터 시작된 이슬람 세력의 이베리아반도 침공,십자군 전쟁(11세기 말~13세기 말) 등을 통해 유럽에도 전파되었는데.....유럽에서 카눈은 '카농(프랑스)' '카논(에스파냐)' '카노네(이탈리아)' 등 다양한 명칭을 얻게 되었습니다.(이 시기 이슬람 제국의 힘이 워낙 강성하였고...특히 현재의 '스페인' 인 이베리아반도의 에스파냐는 이슬람에게 정복을 당하며 이슬람 문화를 많이 받아 들 일 수 밖에 없었음.) 


13세기 에스파냐 이론가 에기디우스 가 쓴 논서 '아르스 무지카'(1270) 에는 당시 에스파냐에 직사각형인 카눈과 그것을 절반으로 자른 형태의 카눈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당시 에스파냐에서는 두 악기를 각각 '카논 엔테로' '메디오 카논' 이라고 구분해서 지칭하였고.....이 악기들에 대한 기록이 13세기 에스파냐 서정시 '성모마리아 찬가' 에도 남아 있습니다.



19세기 카눈 구조도


한편 카눈의 본고장에서도 카눈은 여전히 중요한 악기로 여겨졌는데.....예를 들어 아홉 가지 악기를 소개하는 14세기 페르시아 논서 '칸즈 알 투하프' 에 카눈에 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고.....18세기 경부터 이란에서는 카눈 연주가 점차 줄어들었다고 전해지지만 18세기에도 오토만 제국(현재 터키)에서는 궁정 음악에 카눈이 상당히 자주 사용될 정도로 카눈 연주가 성행하였으며.....19세기 이집트에서도 카눈을 연주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 영국의 사전 편찬자이자 번역가인 '에드워드 윌리엄 레인' 의 19세기 저서 '현대 이집트인의 예절과 관습에 관한 설명'(1836) 에 카눈의 구조와 카눈 연주자를 그린 삽화가 들어 있기도 합니다.




◈카눈의 개량(19세기 이후)


오늘날의 카눈은 중세시대 사료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카눈과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는데.....현대의 카눈 공명통은 일반적으로 두 모서리가 직각을 이루는 사다리꼴 형태이지만 중세 시대에만 해도 공명통 형태가 한 가지 모양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중세시대 기록에는 카눈이 세로로 들고 연주하는 악기로 묘사되어 있지만.....오늘 날에는 카눈을 무릎이나 받침대 위에 눕혀 놓고 연주를 하고.....또한 현대 카눈이 19세기와 그 이전의 카눈보다 크기가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현 아래에 금속 '조율레버' 가 추가 되었다는 것인데.....조율레버를 세우면 진동하는 현의 길이가 짧아져서 음높이가 미세하게 올라가게 되고 반대로 레버를 눕히면 음높이를 미세하게 낮출 수 있습니다.


금속 조율레버가 있는 카눈


조율레버가 추가된 정확한 시기와 최초의 개발자에 관해서는 또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으나 확실한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다만 20세기 초에 개발되었다는 것과 조율레버의 개발이 카눈 연주에 있어서 상당히 혁신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악기사에서 보면 자기가 무언가를 새롭게 개발하면 "내가 이걸 개발했어요." 라고 먼저 자랑을 하면서 개발자의 이름이 악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 보통인데...이렇게 획기적인 조율레버를 개발한 개발자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 참 의외였고...필자가 생각하기에 아마 '조율레버' 가 만들어졌던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해서 부끄러워 말을 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 당시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사람이라 조용히 넘어간 것이 아닌가 싶음.)  


과거에는 연주자들이 음에 미세한 변화를 주기 위해서 왼손으로 계속 줄을 눌러야만 했기 때문에 오른손으로만 현을 튕겨 단조롭게 연주할 수 밖에 없었지만.....조율레버의 도입으로 연주자들이 왼손을 보다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서 카눈 연주가 전보다 훨씬 화려해지는 결과를 낳았고.....오늘 날 카눈의 특징적 주법 중 하나인 병행 주법 또한 조율레버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악기 개량으로 연주자들이 보다 화려한 연주 기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보다 복잡한 기교를 요구하는 카눈 작품들도 새롭게 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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