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유일한 아치형 하프인 '사웅가욱' 은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연주되었고.....지금의 이라크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인도를 거쳐서 9세기 이전에 미얀마로 전파되었는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악기 '사웅가욱' 의 역사(아치형 하프의 기원과 전파, 사웅가욱의 형성)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치형 하프의 기원(기원전 3000년 경)
아치형 하프는 여러 유형의 하프 중에서 역사가 가장 긴데요. 이집트와 아프리카,중동,인도 등에서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아치형 하프가 연주되었던 기록이 남아 있지만.....지금도 연주되는 아치형 하프는 미얀마의 사웅가욱 밖에 없는데.....아치형 하프가 계속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하게 된 원인은 구조적인 문제와 음향적인 문제 두 가지라고 생각 됩니다.
먼저 구조적인 문제로는 고대의 아치형 하프들이 현을 C자 형태로 구부러진 목의 끝에서 울림통 쪽으로 걸었기 때문에 장력이 너무 커서 목 부분이 몸통 쪽으로 휘어져 버린다는 것이었고.....또 음향적인 문제는 악기의 현이 울림통과 수직에 가깝게 배치되었기 때문에 주파수가 두 배로 증폭되어서 원래 음보다 한 옥타브 높은 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옛날에는 고치기 쉽지 않은 정말 큰 문제였을 것 같음.)
사웅가욱의 현이 아치의 끝 부분이 아닌 중간 부분에서 완만한 대각선 방향으로 걸리도록 발달하게 된 것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와 음향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였던 것으로 보이는데.....미얀마 외의 다른 지역에서 사용되던 다양한 아치형 하프들은 이후 점차 쇠퇴하였고.....각진 하프나 현을 감싸는 틀이 있는 프레임 하프 등으로 대체 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학자들은 사웅가욱의 원형인 아치형 하프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인도를 거쳐서 미얀마로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지금은 이라크에 속하는 지역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영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이집트 문명,인더스 문명,황하 문명과 더불어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로.....기원전 7000~6000년 경에 탄생한 문명인데요.
정착 생활과 신석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촌락이 형성되고 금속을 사용하면서 점차 발전하였고.....기원전 3000년 경에는 수메르 문명이 등장하면서 도시 국가의 형태로 발전하였는데.....아치형 하프가 사용된 기록이 이 시기에 처음으로 등장하였으며 기원전 3000~2500년 경에 이 지역에서 제작된 돌로 만든 그릇의 옆면에 아치형 하프로 추정되는 악기가 '부조' 로 새겨져 있었습니다.(아치형 하프도 정말 역사가 오래된 악기 중 하나인데...현재는 사웅가욱 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필자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움.)
기원전 2600년 경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세워진 도시 '우르' 의 유적지에서도 아치형 하프가 발굴되었는데.....우르는 현재 시리아의 텔엘무카이야르 지역에서 발달한 고대 도시로 1922년 부터 1934년 까지 영국의 고고학자인 찰스 레너드 울리 경이 이곳에서 1800여 개의 무덤을 발굴하였습니다.
복원된 푸아비 여왕의 하프
한 편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푸아비 여왕' 의 무덤이라고 볼 수 있는데.....이 무덤에 매장된 여성이 정말로 왕비였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뒷 받침 해주는 증거가 없기는 하지만.....무덤의 규모나 부장품 등으로 보았을 때 우르의 첫 번째 황제가 재위하던 기간에 살았던 권력층의 여성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여왕이라는 칭호가 붙었습니다.(푸아비 여왕의 무덤에서는 화려하게 장식된 하프와 리라를 비롯해서 황금관,바지 등의 부장품이 출토 되었기 때문에 필자가 보기에도 여왕의 무덤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함.)
푸아비 여왕의 리라들
푸아비 여왕의 하프는 바닥과 평행한 방향으로 누워 있는 울림통과 곡선을 그리면서 위로 뻗은 목 사이에 현이 대각선으로 걸려 있는 아치형 하프의 좋은 예인데요.
하프와 함께 발굴된 리라는 푸아비 여왕의 묘에서 출토된 가장 대표적인 부장품 중 하나로 나무와 석회암,금 등으로 정교하게 장식된 화려한 악기입니다.
푸아비 여왕의 리라에 장식된 황금 송아지
◈아치형 하프의 전파(기원전 1세기~10세기)
아치형 하프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인도로 전파되었는데.....'비나' 라고 부르는 아치형 하프가 기원전 1세기 부터 800년 경까지 인도에서 연주되었고.....굽타 왕조 시대(320~550)까지는 인도에서 비나라고 하면 아치형 하프를 가리켰지만.....그 후에는 현악기를 '비나' 로 총칭하게 되었습니다.(굽타 왕조의 제 2대 왕인 사무드라굽타 왕(재위 335~376) 집권기에 제작된 황금 동전에 아치형의 하프를 연주하는 음악가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확실한 듯.)
현이 정확히 몇 줄인지는 보이지 않지만 당대의 사료들에 삽타탄트레 비나(7 현 비나)라는 악기에 대한 기록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근거로 학자들은 황금 동전에 묘사된 악기가 7 현 비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국가적으로 통화되던 동전에 아치형 하프가 새겨져 있다는 것은 당시에 아치형 하프가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악기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퓨 족의 주요 도시(8세기 경)
아치형 하프는 인도의 불교 왕조였던 마우리아 왕조(기원전 321~185)의 번영과 더불어 미얀마의 남쪽 지방인 퓨 족의 도시 '스리 크세트라' 까지 전파되었는데.....퓨 족은 중국에서 표 족이라고 알려진 소수 민족으로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처럼 불교 문화를 바탕으로 음악과 무용이 발달한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습니다.
퓨 족은 기원전 200년 부터 900년 까지 미얀마 북부의 아예야르와디 강 유역에 도시 왕국을 이루었는데.....스리 크세트라는 5세기 에서 7세기 사이에 건설되어서 7세기 부터 9세기 까지 퓨 왕조의 마지막 수도가 되었습니다.
이 곳에 세워진 보보지 파고다(불탑) 에는 음악가와 무용수들이 조각되어 있는데.....여기에서 사웅가욱의 전신으로 추정되는 5 현 아치형 하프가 보이고.....이 부조는 미얀마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사웅가욱에 관한 사료입니다.(미얀마 여행가면 필자도 보보지 파고다는 꼭 한 번 방문해서 5 현 아치형 하프 부조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예정임.)
보보지 파고다
중국의 역사서에도 퓨 족이 아치형의 하프를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는데.....대표적인 자료는 당 시대에 집필된 '신당서' 에 등장하며.....이 책에 따르면 퓨 왕조의 음악가들이 802년에 당나라의 덕종을 위해서 아치형의 하프를 연주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얀마 왕조와 사웅가욱의 형성(11~19세기)
약소국이었던 미얀마는 11세기 부터 1885년 영국령에 통합되기까지 여러 왕조의 통치를 받아왔었는데.....당시 미얀마에는 바마르 족, 몬 족, 샨 족, 퓨 족 등 다양한 소수 민족이 정착해 살고 있었고.....이들이 패권을 쟁탈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게 되면서 왕조는 자주 바뀌었지만.....각 왕조는 서로의 문화를 흡수하고 받아들여서 불교를 중심으로 한 통합적인 문화를 발전 시켰습니다.(바마르 족 출신인 아노라타 왕이 1044년 중부 미얀마에 있는 바간(파간)을 수도로 해서 미얀마 최초의 통일 왕조인 바간 왕조를 세웠음:오늘도 악기 공부하면서 역사 공부까지 하니 좋네...일석이조.)
바간 아난다 사원
이 당시 사웅가욱은 바간 왕조의 종교 의례를 반주하거나 연회에서 연주되었는데.....궁중에서 사웅가욱을 연주하던 조정 관리들 중에는 이례적으로 여성 연주자들도 있었다고 하고.....이런 궁중 음악회의 장면들이 바간 왕조의 세 번째 왕이었던 찬시타 왕이 11세기 경에 건설한 나가용 사원,아난다 사원을 비롯한 바간 양식의 사원과 무덤 등에 묘사되어 있다고 합니다.
바간 왕조가 원나라의 침략을 받아서 1287년에 몰락한 이후 1531년에 퉁구 왕조가 설립되기 전까지 미얀마는 하나의 통일 국가가 아니라 또 다시 여러 소수 민족 국가가 병존하는 형태로 유지되었지만.....다행히 바간 왕조의 문화적 전통은 지속적으로 계승되었습니다.(보통 약소국이 강대국의 침략을 받으면 약소국 나라의 이전 까지의 화려한 문화들이 훼손되고 탄압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참 다행스러운 일임.)
샨 족이 세운 아바 왕조(1364~1555) 시대에 제작된 프레스코에 등장하는 사웅가욱은 현이 11줄로 퓨 족이 사용하던 5 현 아치형 하프가 아닌 이미 현대의 사웅가욱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또 콘바웅 왕조(1752~1885) 시대에는 시암 왕국(지금의 타이)의 문화가 미얀마로 유입되면서 사웅가욱의 레퍼토리가 크게 발전하였고.....현의 수가 늘어나면서 음역도 확장되었는데.....콘바웅 왕조의 세 번째 왕이었던 신뷰신 왕이 시암 왕국의 수도였던 아유타야 를 점령했을 때 시암 궁중 음악가들과 예술가,궁인들을 미얀마로 데리고 왔고.....이들이 콘바웅 왕조와 시암 왕조의 문화를 융합해서 다양한 사웅가욱 음악을 만들었습니다.(이런 문화의 융합은 정복 전쟁의 순 기능적인 측면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그래도 정복보다는 자연스러운 외교로 문화를 서로 주고 받는 것이 더 많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함.)
콘바웅 왕궁의 궁중 화가가 그린 대관식
콘바웅 왕조의 조정 관리이자 시인,극작가로 활동했었던 미아와디 밍지 우 사 는 인도의 라마야냐가 시암에서 전파되어 만들어진 라마키엔 이라는 음악 장르를 미얀마로 도입하였고.....또한 여기에 맞는 사웅가욱을 위한 새로운 음악들을 작곡함으로써 미얀마의 음악과 사웅가욱 레퍼토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우 사는 13현 사웅가욱을 개발하였는데...그의 개량으로 사웅가욱의 음역대가 두 옥타브 반으로 늘어나면서 C3에서 F5까지 의 음역을 연주 할 수 있게 되었음: 필자가 사웅가욱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임.)
콘바웅 왕조의 마지막 사웅가욱 연주자였던 우 마웅 마웅 지 는 13현 사용 사웅가욱에 하나의 현을 더 추가해서 14 현 사웅가욱을 만들었는데.....이 악기는 청나라에 종가오지 라는 이름으로 전파되었고 1885년 영국과의 전쟁에 패배하자 미얀마는 영국령 인도에 병합되었지만.....영국의 지배 하에서도 사웅가욱 연주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사웅가욱 제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886년 영국령 인도에 편입된 미얀마는 제 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하다가.....1948년 마침내 영국에서 독립하였고.....독립 이후 양곤과 만달레이에는 주립 예술학교가 세워졌으며 사웅가욱 제작과 교육도 계속 되었는데요. 1960년 대에는 '우 바 탄' 이라는 하프 연주자가 16현 사웅가욱을 개발함으로써 현재 미얀마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형태의 사웅가욱이 만들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