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길쭉한 북통이 있는 '콩가' 는 무릎 사이에 끼우거나 바닥에 세워 놓고 북면을 두드려 연주하는 아프리카 문화에 기원을 둔 쿠바 대도시의 빈민가에서 룸바 음악과 함께 발생한 타악기인데요. 오늘 포스팅에서는 악기 '콩가' 의 '기원과 대중화 그리고 현대의 콩가' 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상세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콩가의 기원
콩가는 아프리카 문화의 영향을 받아 쿠바 대도시 변두리의 빈민가에서 발생한 타악기인데요. 19세기 말에 쿠바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자 각지에서 흩어져서 노예로 생활하던 아프리카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아바나' 와 '마탄사스' 등의 대도시로 대거 이동하였고.....그 과정에서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도시 변두리에 터를 잡고 빈민가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필자의 이전 '봉고' 에 관한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노예 제도 폐지 이후 더 이상 노예가 아니었던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먹고 살기 위해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로 몰려 들었음:물론 경우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 지방에서 대거 상경했었던 '서울 러시' 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음.)
콩가의 발생지
그 곳에 다양한 혈통의 아프리카인들이 계속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여러 부족의 문화가 혼합된 음악과 춤, 악기가 발생하였는데.....이러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타악기들을 중심으로 노래와 춤이 함께하는 빠르고 복잡한 리듬의 '룸바' 와 그 연주에 사용하기 위해 타악기 '콩가' 가 탄생하였습니다.
한편 쿠바에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은 대부분 반투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콩가의 형태에는 반투족의 고전 타악기들이 필연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고.....그 중에서도 대다수의 학자가 콩가의 발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악기로 꼽는 것이 바로 '마쿠타' 와 '유카' 인데.....마쿠타는 종교의식용 북으로 제작 방식과 겉 모양까지도 콩가와 매우 흡사하며 여흥을 즐기기 위해 연주하던 유카는 아보카도 나무의 속을 파서 한 쪽 끝에만 가죽을 씌운 긴 통나무 형태의 북이었습니다.
반투계 부족인 콩고족의 다양한 타악기
하지만 일각에서는 '응고마' 라는 반투족 타악기가 콩가의 형태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그러나 이에 대해 음악 인류학자 '놀란 워든' 은 "'응고마' 는 반투어로 '북' 이라는 뜻일 뿐입니다. 원래 반투어에는 다양한 방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쿠바의 반투족 사람들이 '응고마' 라고 했을 때는 그냥 서로 전혀 다른 북을 지칭했을 가능성이 높고...따라서 '응고마' 가 콩가의 형태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라고 반박하였습니다.(필자도 이 부분이 궁금해서 여러 자료들을 찾아 보았는데...그렇게 많은 자료들을 보고 난 이후 필자의 결론은 확실히 놀란 워든의 주장이 맞는 것 같음.)
아프리카 반투어 사용 지역
또 아프리카계 쿠바인들 중 반투족 다음으로 많았던 루쿠미족(나이지리아 요루바족의 후손) 의 악기인 '벰베' 라는 북도 콩가의 형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쿠바의 인류학자 페르난도 오르티스(1881~1969) 에 따르면 벰베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 상당수가 콩가와 외양이 유사하다면서 이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고.....이 밖에도 도시 변두리 빈민가에 모여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의 영향으로 여러 타악기가 콩가의 발생에 조금씩이라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콩가의 대중화(20세기 초부터 쿠바 혁명 이전까지)
콩가는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소수의 사람들만 사용하는 악기였고 쿠바에서도 룸바를 연주할 때만 사용했으며.....빈민가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야만인의 저급한 악기로 여겨 '정글의 악기' 라고 비아냥을 듣기도 했었는데요.(여러 기록들에 이에 관해 언급되어 있는데 정말 불쌍할 정도로 상상 이상으로 천대 받았음.)
이렇게 천시받던 콩가가 쿠바 내에서 대중화되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1902년 쿠바 독립 이후 쿠바의 국가 정체성과 결부되며 쿠바를 대표하는 음악 장르로 자리잡은 '손' 의 편성에 콩가가 추가 된 것이었는데.....아바나에서 활동하던 밴드 리더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스(1911~1970) 가 1940년 경에 자신의 손 밴드에 콩가를 도입한 것인 결정적 이유였습니다.(필자가 이전 '봉고' 포스팅에서 봉고가 인기를 얻게 된 이유가 손 음악 때문이라고 했었는데...봉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됨: 같은 쿠바 악기인 콩가와 봉고는 그 'history' 에 참 유사점이 많음.)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스 밴드
로드리게스의 밴드를 시작으로 쿠바의 여러 댄스 밴드에서 앞 다투어 콩가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이전까지 '단손' 과 '볼레로' 위주로 연주하던 차랑가 밴드에서도 인기 장르인 손을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콩가를 편성에 추가하였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콩가는 쿠바의 댄스 밴드에 없어서는 안 될 악기가 되었고.....한때는 야만인의 악기로 여겨졌던 콩가는 이렇게 쿠바 음악의 주요 악기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입니다.(필자 개인적으로 이런 극적인 성공 스토리 너무 좋아함.)
비슷한 시기에 쿠바 밖, 특히 쿠바와 인접한 미국에서도 쿠바 음악과 악기의 인기가 높아졌는데.....뉴욕에서 활동하던 마치토(1908~1984) 의 밴드는 1940년대 초에 처음으로 콩가를 고정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1947년 부터는 트럼펫 연주자 디지 길레스피(1917~1993) 의 재즈 밴드에서도 콩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토 댄스 밴드
길레스피가 가장 처음 기용한 콩가 연주자는 쿠바 아바나 출신의 차노 포소(1915~1948) 였는데.....포소가 작곡에 참여한 “Manteca”와 “Tin Tin Deo”, “Afro Cubano Suite”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길레스피와 마치토의 밴드 이 외에도 티토 푸엔테(1923~2000), 스탠 켄턴(1911~1979) 등이 이끄는 밴드에서도 콩가를 도입하였는데.....이처럼 '아프로큐반 재즈' 를 연주하던 유명 밴드들이 콩가를 점차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콩가 연주자를 여러 명 고용하는 대신 한 사람이 콩가 여러 대를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처럼 자리잡게 되었습니다.(필자 개인적으로 아프로큐반 재즈 상당히 좋아하고 즐겨 듣고 있음.)
디지 길레스피
◈현대의 콩가(쿠바 혁명기 이후)
쿠바의 리듬과 타악기를 재즈에 접목한 아프로큐반 재즈 혹은 쿠밥 은 미국에서 1960년대 이후까지도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었는데.....여기에는 1950년대 후반의 쿠바 혁명과 미국-쿠바 수교 단절 이후에 미국으로 대거 유입된 쿠바의 음악가들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공산주의가 싫다고 많은 음악가들이 조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버렸고...결과적으로 쿠바는 이때 미국에 많은 음악 인재들을 빼앗긴 꼴이 되었음.)
한편 쿠바 혁명을 주도한 카스트로 정부가 손 장르를 바티스타 정권의 퇴폐적 잔재로 규정하면서 쿠바 내부에서는 오히려 손의 열기가 식기 시작하였는데.....그러나 손과 달리 룸바는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었고 로스 무녜키토스, 그루포 아프로쿠바, 요루바 안다보, 로스 파피네스, 클라베 이 과광코 등 여러 그룹을 통해 룸바 음악에서도 콩가가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댄스 밴드,재즈 밴드들의 콩가 편성과 아프로큐반 음악의 인기 외에도 콩가의 대중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현대식 조율 장치의 개발이었는데.....전통적인 콩가는 북면의 가죽이 북통에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율을 하려면 헤드에 열을 가해서 건조시키거나 물을 묻혀서 가죽이 늘어나게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요.(이전 포스팅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역시 봉고도 똑같은 애로 사항이 있었고 현대식 조율 장치의 개발과 함께 이런 문제가 말끔히 해소되었음: 정말 콩가와 너무 많이 닮아 있다.)
아프리카 전통 북 조율법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콩가를 간편하게 조율할 수 있는 현대식 조율 장치가 개발되면서.....이러한 번거로움이 없어졌고 헤드를 훨씬 팽팽하게 만들 수 있어 기존보다 더 높은 소리도 낼 수 있었습니다.(그 밖에도 악기 제작자들이 유리 섬유와 합성 소재를 이용해 관리하기 쉽고 더 튼튼한 악기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것도 콩가의 대중화에 크게 일조하였음.)
현대식 조율 장치 장착한 콩가
한편 1970년 대에는 '살사' 가 크게 유행하였는데.....살사는 처음에는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들만의 문화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라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음악이 되면서 강한 생명력을 얻었고.....콩가 역시 주요 라틴 타악기로써 계속하여 높은 인지도와 함께 큰 인기를 누렸는데요.(살사의 유행과 함께 다시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된 것도 봉고와 똑같이 닮아있음: 하도 유사점이 많아 필자는 콩가 와 봉고를 그냥 '형제 악기' 라고 부름.)
이 시기에는 또한 로스 반 반, 이라케레, 에네헤 라 반다 등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쿠바 밴드들이 등장하여 송고,팀바(살사,펑크,R&B 등을 결합한 음악 장르) 와 같은 새로운 장르에 콩가를 사용하였고.....다른 한편에서도 전통적 스타일을 고수하는 밴드 시에라 마에스트라 와 1978년 엘리아데스 오초아 가 리더를 맡은 콰르테토 파트리아, 1990년 대에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등이 전통적 손 음악을 연주하면서 역시 콩가를 사용하였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아프로큐반 음악 장르와 유명 밴드들이 쿠바 안 팎에서 오랜 기간 인기를 끌면서.....콩가의 수요가 늘고 대량 생산과 악기 개량으로 공급이 증가한 결과 오늘날 아프로큐반 음악 장르와 재즈 이외에도 팝,록,리듬앤블루스,레게,컨트리뮤직,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에서 콩가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